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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ICES
< 2024 NEW PHOTOGRAPHERS 그룹전)

'TEN VOICES'

2024.11.08.(금)~17.(일)

- 타자, 사방, 사물들 -

                                                                  이정희(사진평론가)

 

살아있는 존재들은 늘 ‘바깥’을 열망합니다. 그 ‘바깥’에 도착한 사람이 아직 없다 해도, 그곳으로 가는 길이 나있지 않아도 우리는 끊임없이 ‘바깥’을 넘나들고 싶어 합니다. 전시 서문에 앞서 ‘돈키호테’를 그대로 다시 쓴 보르헤스의 메나르처럼 한 시인의 시어를 그대로 다시 옮겨 써봅니다. 한 시대를 이끈 이 뛰어난 시인이 휘적이며 걸어간 길은 그대로 우리의 길이 되어 옵니다. 텍스트는 이미지의 근원이 되고 이미지는 텍스트의 근원입니다. 시인은 시어로, 우리는 한 장 혹은 몇 장의 사진으로 ‘바깥’을 내다봅니다. 세계의 근원에 닿고자 하는 언어들은 비록 서로 달라도 그 경계를 구분할 수 없습니다. 그것이 문자의 형식이든, 인간이든, 새든 새똥이든 뿌리를 박고 서있는 미루나무든 모두가 서성이며 자기 길에서 제 삶을 열심히 살면서 다른 ‘바깥’을 바라봅니다. ‘바깥’을 내다보는 중에 사방의 사물들과 우리의 눈으로는 인식하지 못하는 저 너머의 것들, 그 미미한 것들끼리 스며들고 얽히면서 그것들은 새로운 사건이 되고 생각지 않은 부활의 빛이 되기도 합니다. 과학에서는 그 신비한 상황을 ‘창발’이라고 하지만 우리 사진작가들은 이 눈부심의 순간을 무엇이라고 불러야 할까요?

 

우리의 이야기의 주인공들은 나의 ‘사방’에 존재하는 것 모두입니다. 길이었다가 메꽃이었다가 삭아 닳아 썩어지어 버려진 신상이었다가 트레이싱 종이에 프린트된 신문지의 불행한 아이들의 이름이었다가 찬란한 신화의 여신이었다가 기억 속의 어떤 집이었다가 나비였다가 힘차게 뻗어가는 나무이거나 물감통의 물감이었다가 부동액에 담긴 죽은 나방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시인의 시어는 우리들 이미지의 주인공들이기도 합니다. 어찌 우리가 사방의 이 미물들과 어울리지 않고도 살아갈 일이 있겠습니까?

 

“길은 바닥에 달라붙어야 몸이 열립니다. 나는 바닥에서 몸을 세워야 앞이 열립니다. 둑의 길도 둑의 바닥에 달라붙어 들찔레 밑을 지나 메꽃을 등에 붙이고 엉겅퀴 옆을 돌아 몸 하나를 열고 있습니다. 땅에 아예 뿌리를 박고 서 있는 미루나무는 단단합니다. 뿌리가 없는 나는 몸을 미루나무에 기대고 뿌리가 없어 위험하고 비틀거리는 길을 열고 있습니다. 엉겅퀴로 가서 엉겅퀴로 서 있다가 흔들리다가 기어야 길이 열리는 메꽃 곁에 누워 기지 않고 메꽃에서 깨꽃으로 가는 나비가 되어 허덕허덕 허공을 덮칩니다...... 그 길 하나를 혼자 따라가다 나는 새의 그림자에 밀려 산등성이에 가서 떨어집니다. 산등성이 한쪽에 평지가 다 된 봉분까지 찾아온 망초 곁에 퍼질러 앉아 여기까지 온 길을 망초에게 묻습니다. 그렇게 묻는 나와 망초 사이로 메뚜기가 뛰고 어느새 둑의 나는 미루나무의 그늘이 되어 어둑어둑합니다”

 

2024년 전시 <텐보이스, 그 침묵의 소리>는 2024년 8월과 11월에 탄갤러리와 전주 아트갤러리에서 전시됩니다. 이번 전시에도 크게 3개의 인문학 텍스트가 사진작업의 기반이 되었습니다. 만남이 목적한 바 없이 이루어지듯이 이 세 개의 텍스트들도 불현듯 우리의 읽을 거리로 찾아왔습니다. 첫 번째 찾아온 이는 왕은철교수의 텍스트였습니다. 그가 쓴 ‘트라우마와 문학’에서 소개된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목소리소설’과 귄터 그라스의 ‘게걸음으로’, 샐리 모건의 ‘나의 자리’, 슈피겔만의 ‘쥐’ 이야기는 결국 레비나스가 우리에게 요청하는 ‘벌거벗은 타인에 대한 연민과 사랑’에 연루됩니다. 두 번째 찾아온 책은 양해림 교수를 비롯한 8명의 니체리언들이 쓴 ‘니체의 미학과 예술철학’이었습니다. 우리 안에 얼어붙은 바다를 내려치는 텍스트들이었습니다. 세 번째 텍스트는 레비나스의 하염없는 환대와 관계성에 관한 ‘타인의 얼굴-레비나스의 철학’(강영안)이었습니다. 레비나스의 관계론은 ‘캐런 바라드’(박신현)와 그레이엄 하먼의 ‘예술과 객체’(김효인역), 루이스 글릭의 시집 ‘야생붓꽃’(정은귀역)으로 이어집니다. 텍스트는 이미지를 풍부하게 해줍니다. 이미지로서 사진은 ‘사방’의 목소리를 어떻게 발언할 수 있는가를 실험해 봅니다. 이번 텐보이스 시리즈 2에는 다양한 사유의 확장을 시도하는 11명의 뉴포토그래퍼 작가들의 뜨거운 변화를 보여줄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무용하나 유용한 우리의 전시를 위해 다시 한번 아주 오래된 시로 글을 마무리해야겠습니다. ‘헛된 희열’은 생산과 목적 중심의 세계에서 벗어나 우리가 영혼을 가진 존재임을 깨닫게 하는 힘이기 때문입니다.

 

 

어둠 속에 하나씩 불붙이는 세 개의 성냥

첫 개피는 너의 얼굴 모두 보려고

둘째 개피는 너의 두 눈을 보려고

마지막 개피는 너의 입을 보려고

NEW PHOTOGRAPHER – TENVOICE에 관하여

 

뉴포토그래퍼 사진미학 연구모임은 2019년 10월 대전 사진작가를 중심으로 시작되었다. 2020년 첫 전시는 한중일교류협회와 대전예술포럼의 초대전으로 <역사를 이야기하는 9가지 방법: 천사여 고향을 보라>를 통해 일제 강점기의 수탈과 비극을 알레고리화한 작업을 발표했다,

 

2021년 전시는 백제문화에 깃든 원형성에 관련한 전시기획으로 정읍사의 한 구절 ‘달하 노피곰 도다샤’에서 시작점을 찾아 <사랑과 죽음의 서사16 : Lohas’s Mythos>를 대청호 로하스 강가에서 열었다. 신화에서부터 현대자본 논리하에 펼쳐지는 사랑과 죽음에 관한 논점이다. 작업을 위해 프로이트와 바타이유, 바디우를 거쳐 밀란 쿤데라와 이승우의 소설과 랭보와 보들레르, 이성복의 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텍스트를 스터디한 후 이미지를 작업했다.

 

2022년 전시는 ’타자‘에 관한 은유를 담은 <TEN VOICES>를 선보였다. 2022년은 우크라이나전쟁이 시작된 우울한 시기였다. 언제라도 나치와 스탈린의 망령이 살아나고 영혼의 페스트가 창궐할 수 있다는 칼 포퍼와 아렌트의 예언이 현실이 되었으나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문명 이전과 이후의 삶은 어떻게 다른가. 우리가 인간의 종이라는 것을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 뉴포토그래퍼의 사진연구의 발단이 벤야민의 ’새로운 천사(Angelus Novus)‘에서 비롯된 만큼 뜨겁게 살기를 원했으나 고독했고 불행했을 이들에게 바치는 작업이었다.

 

2023년 전시는 <코끼리의 방>이었다. 말하기는 불편하나 말해야만 하는 이야기들이다. 흘러가는 시간 속에 영원한 것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어떤 것을 영원히 살아있게 하고 싶은가.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나. 우리가 남기는 귓속말은 무엇이어야 할까. “내 말이 불과 같지 아니하냐? 바위를 부수는 망치와 같지 않으냐?(예레미야)” 10인의 작업이 사랑이 삭제되어가는 이 무도한 시대를 깨뜨리는 것이기를 바랬다.

 

2024년 전시는 <텐보이스, 그 침묵의 소리>로 2024년 8월과 11월에 탄갤러리와 전주 아트갤러리에서 전시된다. 이번 전시 역시 몇 개의 텍스트가 우리의 사진 작업의 기반이 되었다. 전시 ’텐보이스의 침묵의 소리‘는 중층의 목소리를 담았다. 시대로부터 오는 상처와 욕망과 기억의 소리, 작고 은밀한 세계로부터 번져오는 생명의 소리, 뜨겁게 들끓어 오르는 ’사방‘의 에너지들이다. 이번 전시의 공통 지점은 ‘타자와의 관계성’에 있다. 우리에게 타자란 내 앞의 모든 존재를 말한다. 인간과 비인간의 모든 사물에 이르기까지. 이미지로서 사진은 사방의 목소리들을 어떻게 알레고리화하는가에 대한 실험이다.

뉴포토그래퍼 작가들

대표 이정희, 김미경, 김춘숙, 백명자, 서동훈, 신은주, 심유림, 이경환, 이종경, 정옥영, 최재중 (rara558@naver.com),

​이정희

김미경

신은주

서동훈

백명자

김춘숙

이경환

​심유림

이종경

정옥영

최재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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